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천주교 청주교구 (문단 편집) === 역사 === [[천주교 서울대교구|서울대목구]] 관할 지역이던 충청북도 지역은 전쟁의 혼란통을 딛고 1953년 9월 초부터 미국 [[https://directory.cbck.or.kr/OnlineAddress/Catholic/DetailInfo.aspx?cgubn=g&gubn=6&gyogu=201005720&code=201002306&tbxSearch=&gubn2=all&char=all|메리놀외방전교회]]에 전교 사업을 전격적으로 위촉함과 동시에 서울대목구 소속 감목대리구로 설정되었다. 그 후 1958년 6월 23일에 충청북도 감목대리구는 서울대목구로부터 자치 독립하여 청주대목구(지금의 교구)로 독립하였고, 메리놀회 소속이던 [[파지 야고보]] 신부는 7월 4일 교황청으로부터 초대 대목구장으로 임명되어, 그 해 9월 16일 미국에서 주교품을 받았으며, 11월 26일 착좌식이 거행되었다. 1958년 청주교구의 교세는 본당 15개, 신자 18,600명, 주교 1명과 메리놀회 신부 29명(한국인 사제는 없었음)이 소속된 상태였다. 1962년 한국 천주교에 교계 제도가 설정됨에 따라 청주대목구는 정식 교구인 청주교구로 승격되었다. 파지 야고보 주교는 "Salus animarum Lex Supremum"(영혼들의 구원이 최상의 법)을 모토로 재직 11년 동안 미국 메리놀회로부터 물심양면의 지원을 받아 전교 사업과 방인(현지인) 사제 양성에 박차를 가하였으나, 1969년 6월 28일 72세의 고령과 건강상의 이유로 교구장직을 사임했다. 그때의 교세는 본당 22개, 신자 48,073, 신부 27명(한국인 8명, 메리놀 회원19명)으로 성장되어 있었다. 이후 1년간 주교 자리는 공석이였다. 1970년 6월 25일 교황 [[바오로 6세]]는 [[정진석(추기경)|정진석 니콜라오 신부]]를 제2대 교구장 주교에 임명했고, 같은 해 10월 3일 내덕동 주교좌 본당에서 주교 서품식과 착좌식이 거행됐다. 정진석 니콜라오 주교가 봉직한 27년 넘는 기간 동안 청주교구는 본당 53개, 신자 108,763명, 소속 신부 100명으로 성장했다. 1998년 5월 30일 교구장 정진석 니콜라오 주교가 서울대교구장으로 전보되고, 1998년 6월 29일 교구 참사회에서 교구장 직무 대행으로 김원택 프란치스코 신부를 선출하였다. 1999년 6월 3일 [[장봉훈]] 가브리엘 신부가 제3대 교구장 주교로 임명됐다. 같은 해 8월 24일 내덕동 주교좌성당에서 주교 서품식과 착좌식이 거행됐다. 2022년 3월 19일 토요일 오후 8시(로마 시각 낮 12시) [[김종강]] 시몬 신부가 천주교 청주교구 제4대 교구장 주교에 임명됨을 [[주한교황청대사관]]에서 발표했다. 2022년 5월 2일 월요일 오후 2시, 천주교 청주교구 주교좌성당인 내덕동 성당에서, 장봉훈 가브리엘 주교의 주례로 김종강 시몬 신부가 주교로 성성되고 청주교구장으로 착좌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